카드 300장 만들고 시험에 하나도 못 써먹었습니다

플래시카드는 만들기가 쉬워서 오히려 위험합니다. 제가 만들었던 쓸모없는 카드 유형 세 가지와, 한 장에 뭘 담아야 하는지 정리했어요.

·약 5분

플래시카드는 인출 연습이랑 간격 반복을 한 번에 실행하는 도구입니다. 원리만 보면 완벽하죠.

그래서 저는 2학년 겨울에 아주 신이 나서 카드를 300장 넘게 만들었습니다. 이틀 걸렸어요.

그리고 시험에 거의 못 써먹었습니다. 만드는 데 쓴 이틀이 통째로 날아간 거죠.

제가 만든 쓸모없는 카드 세 종류

이러면 안 됩니다 앞 세포호흡 뒤 (교재 두 문단 전체) → 뭘 꺼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음 앞 수요곡선은 우하향하는가? 뒤 그렇다 → 찍어서 맞힘 앞 케인즈는 유효수요가 ( )를 결정 뒤 국민소득 → 문장 모양만 외움 이렇게 바꾸면 삽니다 앞 가격탄력성이 1보다 클 때 가격을 올리면 총수입은? 뒤 감소한다 수요량 감소율 > 가격 상승률이라서 앞 1종 오류와 2종 오류의 차이는? 뒤 1종: 없는 효과를 있다고 함 2종: 있는 효과를 놓침 헷갈리는 둘은 차이로 묻는 게 낫습니다 기준: 답이 하나로 정해지는가 1분 안에 답할 수 있는 단위인가
왼쪽 카드들은 만들기 5초, 효과 0입니다. 저 세 장이 제 첫 카드 덱의 대부분이었어요.

앞면이 너무 넓은 카드

"세포호흡" 한 단어를 앞면에 적고 뒷면에 교재 두 문단을 붙여 놓은 카드. 이거 진짜 많이 만들었습니다.

이 카드는 답을 할 수가 없어요. "세포호흡"만 보고 뭘 꺼내야 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. 그래서 볼 때마다 그냥 뒷면을 읽게 되고, 결국 교재를 카드 크기로 잘라 놓은 것에 불과해집니다.

예/아니오로 끝나는 카드

"수요곡선은 우하향하는가?" → "그렇다."

찍어서 맞힐 수 있는 카드는 인출을 안 시킵니다. 답을 못 꺼내도 정답을 고를 수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. 근데 이런 카드는 만들기가 너무 쉬워서 자꾸 만들게 됩니다.

문장에 빈칸만 뚫은 카드

"케인즈는 유효수요가 ( )를 결정한다고 보았다" → "국민소득"

만들기 3초, 효과 거의 0입니다. 앞뒤 문장 모양을 외우게 될 뿐이라 시험에서 표현이 조금만 바뀌면 못 씁니다.

좋은 카드의 기준은 하나예요

앞면만 보고 답이 하나로 정해지는가.

이거 하나만 통과하면 대체로 쓸 만한 카드입니다. 위 그림 오른쪽처럼요.

그리고 뒷면에 이유를 한 줄 붙이세요. "감소한다"만 적어 두면 나중에 왜인지 다시 찾아야 하는데, "수요량 감소율이 가격 상승률보다 커서"를 같이 적어 두면 그럴 일이 없습니다.

한 장에 하나만

한 장에 세 가지를 넣으면 그중 하나만 막혀도 카드 전체가 "틀림"이 되고, 이미 아는 두 개를 계속 다시 보게 됩니다. 쪼갤 수 있으면 쪼개세요.

헷갈리는 건 차이로 묻기

이게 은근히 강력합니다. 1종 오류랑 2종 오류를 각각 정의로 묻는 카드 두 장보다, 차이를 묻는 카드 한 장이 훨씬 낫습니다.

왜냐면 시험에서 틀리는 지점이 대개 "둘 중 어느 쪽이더라"거든요. 그 지점을 그대로 카드로 만드는 겁니다.

정의만 묻지 말기

정의 카드만으로는 서술형에 대응이 안 됩니다. 같은 개념에 정의 카드 하나, 적용 카드 하나를 만드세요.

예를 들면 "기회비용이란?"이랑 "기회비용 개념이 왜 필요한가?"는 다른 카드입니다. 후자가 서술형에서 점수를 만들어 줍니다.

몇 장이나 만들어야 하나

장수보다 밀도가 중요합니다. 대략 이 정도가 적당해요.

  • 강의 한 회차에 10~20장
  • 슬라이드 한 장에서 카드가 세 장 넘게 나오면 너무 잘게 쪼갠 것
  • 한 챕터에서 다섯 장도 안 나오면 너무 뭉뚱그린 것

그리고 이게 제가 300장 만들면서 놓친 부분인데, 전 범위를 카드로 만들려고 하면 안 됩니다. 한 번 보고 이해되는 건 카드가 필요 없어요.

못 외워지는 것만 카드로 만드세요. 그러면 30장으로도 충분한 과목이 많습니다.

언제 만드느냐도 중요합니다

강의 당일이 제일 좋습니다. 시간이 지나면 뭐가 중요했는지, 교수님이 뭘 강조했는지가 사라져요.

강의 당일에 10~20장씩 뭐가 중요했는지 아직 기억에 있음 시험 2주 전엔 이미 덱이 완성돼 있어서, 그 2주를 통째로 "꺼내기"에 씁니다. 시험 2주 전에 300장 몰아서 만드는 데 이틀 남은 시간 뭐가 중요했는지 이미 흐릿함 그리고 전 범위를 카드로 만들지 마세요 — 못 외워지는 것만 만들면 30장으로 충분한 과목이 많습니다
만드는 시간은 학습 시간이 아니라 준비 시간입니다. 제 이틀이 그렇게 날아갔어요.

시험 2주 전에 처음 만들기 시작하면 만드는 데만 며칠 갑니다. 그리고 만드는 시간은 학습 시간이 아니라 준비 시간이라 그 며칠은 대부분 손해입니다. 제 이틀이 그랬어요.

카드가 안 맞는 것도 있습니다

계산 과정이 긴 문제, 긴 논증이 필요한 서술형은 카드에 안 맞습니다. 이런 건 실제로 손으로 풀어 보는 연습이 필요해요.

카드는 1분 안에 답할 수 있는 단위에만 씁니다. 그 이상은 문제 풀이나 설명해 보기로 다루세요.

요즘은 자동 생성을 많이 쓰는데(저도 과탑에 강의자료를 올려서 만듭니다), 쓰시더라도 첫 20장은 직접 읽어 보고 다듬으세요. 앞면이 너무 넓거나 답이 여러 개인 카드가 섞여 있으면 그것만 고치면 됩니다. 만드는 시간은 아끼고 판단만 하는 게 제일 나은 조합이에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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