족보를 구하고도 학점을 못 받는 사람들
기출은 답을 외우는 자료가 아니라 정보입니다. 형식·배점·깊이·반복 주제 네 가지를 뽑는 법과, 언제 풀어야 하는지.
·약 5분
선배한테 족보를 받으면 일단 마음이 놓입니다. 뭔가 보험을 든 기분이죠.
그런데 제 주변에서 족보를 가지고도 학점을 못 받은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. 저 포함해서요. 공통점이 있었어요. 답을 외웠다는 것.
문제가 그대로 나오면 이득인데, 대개 안 나옵니다. 그러면 들인 시간이 통째로 날아갑니다.
기출은 답이 아니라 정보입니다
기출은 그 과목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보예요. 교수님이 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, 어떤 형식으로 묻는지, 어느 정도 깊이를 요구하는지가 다 들어 있습니다.
뽑아야 할 건 네 가지입니다.
① 출제 형식
객관식인지 서술형인지, 계산이 있는지, 문항 수가 몇 개인지.
여기서 특히 봐야 할 게 문항 수 대비 시험 시간입니다. 90분에 5문제인 시험이랑 60분에 40문제인 시험은 완전히 다른 준비가 필요해요. 후자는 속도가 실력이고, 전자는 깊이가 실력입니다.
서술형 위주 시험을 객관식처럼 준비하면, 아는 내용인데 문장이 안 만들어져서 점수를 잃습니다.
② 배점 분포
어느 단원에서 몇 점이 나왔는지 세어 보세요. 강의계획서상 비중이랑 실제 출제 비중은 자주 다릅니다.
교재에서 두 페이지밖에 안 되는 부분이 매년 20점씩 나오는 경우가 진짜 흔해요. 이건 세어 보지 않으면 절대 안 보입니다.
③ 요구하는 깊이
기출 문장의 동사를 보세요. 설명하라, 비교하라, 계산하라, 비판하라.
이 동사가 그 과목이 요구하는 사고 수준입니다. "비교하라"가 반복되는 과목이면 개념을 하나씩 외우는 대신 차이를 묻는 카드를 만드는 게 맞아요.
④ 반복되는 주제
3년치를 나란히 놓고 겹치는 주제를 표시합니다.
그리고 여기서 제가 두 번 당한 걸 말씀드리면, "작년에 나왔으니 올해는 안 나오겠지"는 근거가 없습니다. 매년 나온 주제는 올해도 나옵니다. 교수님 입장에서 그게 그 과목의 핵심이니까요.
언제 푸느냐가 절반입니다
2주 전에 한 번, 3일 전에 한 번
2주 전 1회차는 채점이 목적이 아닙니다. 대부분 못 풀어요. 목적은 "이게 뭘 묻는 시험인지 아는 것"입니다. 이걸 알고 나면 남은 2주의 공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. 시간 안 재도 됩니다.
3일 전 2회차는 실전 조건으로. 시간 재고, 자료 안 보고, 한 번에 끝까지. 여기서 나온 오답이 남은 사흘의 공부 목록입니다.
마지막 날에 처음 푸는 것
이게 제일 흔한 실수입니다. 전날 기출을 처음 열면, 모르는 걸 발견해도 메울 시간이 없어요. 발견의 가치는 남은 시간에 비례합니다.
답지는 나중에 봅니다
푼 직후에 바로 보지 마세요. 순서가 있습니다.
- 시간 안에 풀 수 있는 만큼 푼다
- 시간 끝나면 자료를 열어서 못 푼 문제를 다시 시도한다
- 그래도 안 되면 답지를 본다
2번을 건너뛰면 "몰라서 못 푼 것"과 "찾으면 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푼 것"이 구분이 안 됩니다. 이 둘은 대응이 완전히 달라요. 전자는 공부가 필요하고 후자는 속도 연습이 필요합니다.
이 구분에 대해서는 오답 분류 쪽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.
답만 있는 족보를 받았을 때
해설 없이 답만 있는 자료, 정말 흔하죠. 이때 답을 외우는 건 거의 쓸모없습니다.
대신 왜 그 답인지를 스스로 복원해 보세요. 복원이 안 되면 거기가 공부할 자리입니다. 답을 아는 상태에서 이유를 찾는 건 설명해 보기의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하고요.
기출이 없는 과목이라면
모든 과목에 기출이 있는 건 아닙니다. 대체 수단이 몇 개 있어요.
- 교재 장말 문제 — 교수님이 교재를 따라가는 과목이면 성향이 비슷합니다
- 강의 중 예제 — 수업에서 다룬 예제는 변형돼 나올 확률이 높아요
- 학기 중 퀴즈 — 있었다면 이게 가장 정확한 출제 견본입니다
- 그냥 물어보기 — 출제 형식이랑 문항 수는 대부분 알려 주십니다
마지막 게 의외로 잘 통합니다. 오피스아워에 가서 "서술형인가요 객관식인가요" 정도는 물어봐도 아무 문제 없어요. 저는 이걸 4학년 되어서야 알았습니다.
이어서 읽기
시험 2주 전 계획이 3일 만에 깨지는 이유
1일차 1~2장, 2일차 3~4장… 이렇게 짜면 반드시 무너집니다. 의지 문제가 아니라 계획 구조 문제예요. 시험일에서 거꾸로 채우는 방법.
이틀 남았는데 범위를 하나도 안 봤을 때
벼락치기를 권하는 글이 아닙니다. 이미 그 상황이 됐을 때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에요. 뭘 버리고 뭘 잡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기준.
오답노트 만드는 데 시간을 다 쓰고 있었습니다
틀린 문제를 예쁘게 옮겨 적어도 다음 시험에서 또 틀립니다. 무엇을 틀렸는지가 아니라 왜 틀렸는지를 네 가지로 나누면 대응이 달라져요.
강의계획서, 3년 동안 두 줄만 보고 살았습니다
시험 날짜랑 결석 횟수만 확인하고 파일을 닫으셨나요. 저도 그랬고, 2학년 2학기에 크게 데였습니다. 학점을 실제로 흔드는 여섯 자리를 정리했어요.
